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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오해와 이해

이슈/정치 | 2009/06/08 23:53 | Posted by krkim

지난번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간단하게 말해서 진보는 평등과 공평함을 중요시하고 보수는 위계질서의 유지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아무리 보수적인 사람들이라도 평등하고 공평한 세상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보수는 진보를 그런 식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한국의 많은 보수주의자들은 진보가 북한 체제나 김정일을 지도자로 모시는 것을 꿈꾸는 사람들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이유는 아마도 보수적인 사람들은 위계질서가 없는 사회는 불가능하다고 보거나 위계질서가 없는 사회를 상상하지 못하는 이유 때문이 아닌가 싶다.  현 위계 질서를 부정한다면 또 다른 위계 질서를 원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는 것이다.
 
공평함과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 진보/좌파이고 위계질서의 유지를 추구하는 것이 보수/우파 라면 북한 정권은 역대 남한의 어느 정권보다 우파적인 정권이다.  북한은 말하자면 조선 이씨 왕조에서 북조선 김씨 왕조로 왕가의 혈통이 바뀌었을 뿐인 나라인 것이다.   내 생각에 북한은 한마디로 존재의 이유 또는 정당성이 없는 나라이다.  3대가 정권을 세습하고 수백만 명이 굶어주고 국민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 체제가 21세기에 존재할 이유가 무엇이 있는가?  북한의 존재 이유는 미국 군사력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한국과 국경을 접하기 싫은 중국이 완충지역을 원하기 때문이다.  즉 현재 북한 주민들은 김정일 일가와 소수 특권층 그리고 중국을 위해 그 고생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소위 진보를 표방하는 사람들 중에서 남한 체제보다 차라리 북한 체제가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인지적 한계 때문일 수도 있고 현실에 대한 불만이 너무 커서 객관적으로 세상을 보지 못해 그러는 것일 수도 있다.  또 한국의 진보 진영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중에는 현재 기득권 층 대신에 다른 사람들 예를 들어 이제껏 사회 경제적으로 하층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배 계층을 이루어 새로운 위계질서를 꿈꾸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평등하고 공평한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이 아니고 게임의 규칙을 바꾸어 재력이나 집안 배경 또는 학벌 같은 기존 방법이 대신 혁명 같은 방법으로 상층 지배 계급으로 올라가고자 하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글머리에서 정의한 바에 의하면 엄밀하게 말해서 진보가 아니다.
 
글머리에서 정의한 바대로의 진보가 꿈꾸는 사회는 지위가 높거나 낮은 사람이 없는 사회 또는 누가 누구를 지배 하지 않는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진정한 진보는 비현실적인 꿈을 꾸는 사람들이라고 비난 받을 수는 있어도 김정일이 지배하는 사회 또는 노동자/농민 계층이 지배하는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진보가 꿈꾸는 궁극적인 사회는 차라리 국가라는 조직 자체도 없는 사회이다.  존 레논의 노래 가사 (Imagine) 처럼.
 
생각해 보면 노무현 대통령은 그런 의미에서 참으로 진보적인 사람이다.  스스로 말했듯이 수직적인 대통령 제도가 불편했던 수평적인 인간이었던 것이다.  권력을 잡았으나 쓰기를 거부했던 노무현은 체 게바라나 프랑스 혁명의 주역이었던 라피엣을 연상시키는 면도 있다.  그는 한국 위계질서상 가장 높은 대통령의 자리까지 올랐지만 스스로 봉하 마을을 찾는 일반 국민들 보다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고 또 한편으로는 미국 대통령이나 일본 왕보다 낮은 사람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던 듯하다.
 
진보의 긍정적인 가치나 의미를 무시하고 무조건 진보라는 것을 현 위계질서를 무너뜨리고 다른 위계질서를 만들려는 것으로 이해 (또는 오해) 하는 것이 이명박 정권이 자꾸 국민과 충돌하는 이유일 것이다.  정권 초기의 촛불 대 시위에서 현정권이 배워야 했던 것은 시위하는 국민들은 머리가 나빠서 광우병의 위험에 대하여 쓸데없이 과민반응한다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은 불공평한 것을 싫어하고 자존심이 강하다는 점이었다고 본다.  그 때 본인이 몇 번씩이나 대국민 사과를 했으면서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속으로는 이게 다 다 PD 수첩 때문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김동길 교수나 이명박 정권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포함한 보수층은 보수의 가치 뿐 아니라 진보의 가치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을  이해했다면 노무현 대통령 서거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에 대하여 어리둥절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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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 된 노무현

이슈/정치 | 2009/05/28 12:24 | Posted by krkim




노무현 대통령의 꿈
 
처음 뉴스를 들었을 땐 좀 멍한 느낌이 들었었다.  놀라지도 슬프지도 않고 그냥 멍하게 아니 죽었단 말이야?  그 후 며칠이 지난 지금도 아직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아서 나도 애도의 글을 블로그에 올리고 싶은데 뭐라고 써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는 글을 블로그에 여러 번 올렸었다.  대충 세어 보니까 10개도 넘는 것 같다.  내 주변에는 노무현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노무현 좋다는 얘기 좀 그만 쓰라는 핀잔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난 왠지 그가 좋았다.   한국에 있었더라면 봉화마을이나 덕수궁 앞에 가서 나도 국화 꽃 한송이나 담배 한 갑 놔 드리고 오고 싶은데 하는 아쉬운 생각도 있다.
 
보수적인 사람들이 노무현을 그렇게 미워했던 (아직도 미워하고 있는) 이유는 먼저 진보 세력을 못나고 돈 없고 공부 못하는 사람들로서 법을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억지를 부려 자기의 처지를 개선해 보겠다는 사람들로 보는데 그런 사람들이 분수를 모르고 분에 넘치는 대우를 요구하게 된 것이 노무현 대통령 탓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내가 보기엔 사회의 기득권 층이나 엘리트 그룹 또는 특권층이 사실 중산층/서민층보다 그다지 많이 잘나거나 똑똑한 것도 없는데 분에 넘치는 대우를 받고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본다.  만일 정말 그렇게 잘나고 여유가 있다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야 할 것이다.  한국 사회는 궁극적으로 캐나다나 유럽 같은 복지국가 쪽으로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은 이민자들과 소수 인종이 자기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서 현재와 같은 우파적 체제가 가능하다고 본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소외감을 느끼며 불공평하다고 느낀다면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그 사회는 바뀔 수 밖에 없다. 
 
노무현을 지지했고 좀 더 공평한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은 중산층을 포함한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어 투표를 통해 그 꿈을 이루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러면 먼저 불법 과격 시위를 하지 말고 급진적인 노선이나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도 거리를 두고 특히 친북 성향이나 아직도 공산주의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은 배척하고 점진적으로 온건 개혁 세력을 통해 복지 국가 체제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본다.  무질서보다는 좀 불공평하더라도 질서가 있는 것이 훨씬 낫고 다수의 국민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노무현을 대통령에 당선 시켰을 떄 처럼 민주주의 원칙아래서 법과 질서를 지키면서 투표를 통해 노무현과 그의 가치를 알았던 사람들의 꿈을 이뤄야 한다.  그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되었을 때 노무현 대통령은 후세에 가장 존경 받는 대통령 중 한 명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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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

 

왕복 두 시간 뉴저지에서 뉴욕으로 출퇴근하는 지루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오디오 북을 도서관에서 빌려 운전하면서 듣는다. 딱 눈에 띄는 것이 없어 마지못해 빌린 것이 David Halberstam 이라는 사람이 쓴 한국전쟁에 관한 책 THE COLDEST WINTER: America and the Korean War 이다. 예상 외로 재미있어서 목적지에 도착하면 중단하는 것을 아쉬워 하며 차에서 내리곤 했다. Halberstam 이라는 사람은 기자출신으로서 베트남 전에 대한 책으로 유명하고 풀리쳐 상을 받은 사람이다.

 이 책은 저자가 한국전쟁에서 직접 총을 들고 싸웠던 미군 사병들이나 장교들을 찾아 다니며 인터뷰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쓴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 저자는 맥아더 장군과 그의 심복인 아몬드 (Edward Almond) 장군을 포함한 지도부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한국전쟁에서 실제로 싸웠던 미군 병사들과 장교들은 대체로 맥아더를 싫어한다고 한다. 한국전에서 그렇게 많은 미군 사상자가 난 것은 그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다. (한국전쟁에서33,000 명의 미군과 415,000 명의 한국인들과 백오십만의 북한사람들과 중국 군이 사망 했다고 한다. )

 한국전쟁은 김일성이 스탈린에게 남침을 허락하고 지원해 달라고 조르던 도중에 당시 미 국무 장관이 애치슨 (Acheson) 이 기자회견을 하는 도중 별 생각 없이 아시아 방어선에 남한을 포함시키지 않은 것이 계기가 되어 시작되었다고 저자는 서술하고 있다. 김일성은 남침 직전 아주 자신에 차 있어서 중국의 모택동이 도와주겠다는 것도 필요 없다고 하면서 중국 특사들을 홀대했다고 한다.

 북한군은 3일만에 서울을 점령하고 그 후 약 한 달 만에 한미 연합군을 부산 지역까지 후퇴시켰다. 그러자 맥아더는 그 유명한 인천 상륙 작전을 감행하여 북한군을 패퇴시킨 것 까진 좋았는데 인천 상륙 작전의 성공에 취해 중공군의 개입에 전혀 대비하지 않고 압록강까지 한미 연합군을 서둘러 밀어 부쳤다고 한다. 그래서 매복해 있던 중공군의 함정에 빠져 수많은 사상자를 내며 미군 전투역사에 남을만한 대패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사실 많은 현장 지휘관들은 중공군이 개입한 것을 눈치채고 조심스럽게 북진하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동경에서 총지휘를 하고 있는 맥아더는 기자들에게 크리스마스까지 전쟁을 끝내겠다고 큰 소리치며 서두를 것을 명령했고 인천 상륙작전 성공 이후 참모들은 맥아더의 지시에 이의를 달지 못했다고 한다. 맥아더의 심복인 아몬드 장군도 그런 상황에 한몫을 했단다.

 맥아더 장군은 자기 휘하 병사들의 안전이나 목숨보다는 자신의 명성이나 역사적 업적을 더 중요시하게 생각했다고 저자는 쓰고 있다. 한국민은 물론 당시 미국민의 영웅이던 맥아더는 명성이나 영향력이 너무 커서 미국 대통령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고 직책은 일본 주둔 연합군 총사령관이었지만 백악관에 대해서 마치 외국 국가 수반처럼 행동했다고 한다. 사실 일본에서 맥아더는 거의 신격화된 대접을 받았다 한다. 트루만 대통령이 만나자고 해도 바빠서 워싱턴에 못 간다고 거부 하자 백악관이 타협해서 워싱턴과 동경의 중간지점에서 만났는데 맥아더는 국방장관은 물론 대통령에게도 경례를 부치지 않았다고 한다.

 맥아더가 참모들의 만류에도 무리하게 인천 상륙작전을 감행한 것도 실리보다는 자신의 명성을 위해 그런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군대를 보내자면 동해안이 훨씬 가까웠던 것이다. 1 차 대전과 2 차 대전을 거치면서 쌓아온 전쟁 귀재의 명성에 걸맞은 과감하고 예상치 못한 상륙작전으로 자기 군 경력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것이다. 인천 상륙작전의 공을 주로 자기에게 돌리려고 한국 주둔군 총사령관인 워커 장군에게 지휘를 맞기지 않고 자기 심복인 아몬드 장군에게 진두 지휘를 맡겼다고 한다. 원래 같은 전투에서 지휘권을 분산시키지 않는 것이 병법의 정석이라는데 맥아더는 한국전의 지휘권을 미8군 사령관 워커 장군과 심복인 10군단장 아몬드 장군 두 사람으로 나누었다고 한다. 한국전의 전공을 주로 자기에게 돌리려는 의도였다는 것이다. 또 인천 상륙 이후에는 낙동강으로부터 퇴각하는 북한군부터 차단하고 섬멸하는 것이 정석인데 북한군의 주력 부대를 퇴각하도록 나두고 대신 서울 탈환에 시간을 많이 썼다고 한다. 이것도 언론을 의식한 작전이라는 것이다. 서울 탈환의 상징성 때문이다.

저자는 맥아더의 심복인 아몬드 군단장에 대해서도 아주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별로 능력이 없는 사람인데 맥아더의 비서실장으로서 절대적인 충성심을 보여 그 덕에 요직도 차지하고 진급도 한 사람인데 부하들에게는 아주 거만하고 전선의 상황이나 부하들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조건 맥아더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쓴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다. 아몬드는 또 심한 인종차별주의자여서 은퇴한 뒤에도 흑인들은 백인들과 격리시켜 군복무를 시켜야 한다는 캠페인을 벌였다고 한다. 물론 당시 미군은 대체로 거의 모두 동양인들을 국 (Gook) 이라고 부르며 무시하는 인종차별적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전쟁 초기에 당한 이유에 북한군을 무시한 이유도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미 8군 사령관 워커 장군 (Walton Harris Walker 1889-1950) 에 대해서는 동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위스키를 좋아해서 별명이 “자니 워커” 인 그는 처음부터 맥아더의 신임을 얻지 못했다고 한다. 자기가 제일 신임하지 않던 장군에 전력이 제일 약한 부대를 개전 이후 처음 한국으로 보낸 이유는 북한군을 과소평가한 이유도 있다고 한다. 전쟁 초반에는 연패를 해서 낙동강까지 밀려났지만 낙동강 전투에서 분투하면서 부산을 방어하는데 공을 많이 세웠다고 한다. 그는 중공군의 개입 이후 패퇴하는 과정에서 지프차가 전복해 사망했는데 패전의 책임을 뒤집어 썼다는 것이다.

 워커의 후임인 리지웨이에 대해서는 아주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당시 미군에서 가장 유능한 장군이라고 평가받는 리지웨이가 처음부터 미8군 사령관을 맡았더라면 한국전쟁이 더 적은 희생으로 더 유리한 위치에서 끝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리지웨이의 가장 큰 장점은 당시 미군 내에 신망과 비중이 커서 맥아더의 간섭을 무시하고 독자적인 지휘를 할 수 있는 장군이라는 것이다. 만일 연합군이 중공군의 개입에 대비하면서 신중하게 북진했더라면 공군도 없고 중화기가 약한 중공군에게 그렇게 쉽게 패배하지 않았을 것이고 인해전술에 좀 밀렸더라도 한반도에서 동서 해안까지의 거리가 가장 좁은 평양 선에서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 저자를 비롯한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이라고 한다. 중공군이 개입했다는 것을 발견한 뒤에도 맥아더는 일선 지휘관들의 반복되는 경고나 호소를 무시하고 대비책을 세우지 않고 무조건 압록강까지 진격을 명령해 중공군의 매복에 걸려들었다는 것이다. 맥아더는 연합군이 압록강에 도달했다는 소식이 빨리 뉴스에 나오는 것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고 저자는 쓰고 있다.

맥아더가 핵무기 사용을 불사하며 중국과의 전면전을 주장한 이유는 자기 생애의 마지막 전쟁을 패배 또는 무승부로 끝내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러나 중국과 전면전을 하게 되면 소련의 개입이 확실시 되고 3차 대전이 발생하게 되는 상황에서 트루만은 정치적인 부담을 무릅쓰고 미국의 영웅 맥아더를 해임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한국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때 미국이 더 많은 미군을 파병하여 중국과 더 적극적으로 싸워서 한반도에서 아예 밀어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때 맥아더의 주장대로 미국과 중국이 전면전을 벌여서 모택동을 몰아내고 장개석이 중국의 정권을 탈환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중국이 그때부터 자본주의 체제로 산업화를 시작했다면 지금 미국보다 훨씬 큰 경제 대국이 되어있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중공군을 한반도에서 아예 밀어내지 못했더라도 평양선에서 막고 휴전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도 하게 된다. 아무리 중공군의 수가 많아도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동경에 앉아 안일하게 지휘하던 맥아더 지휘부의 실책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한국전의 승자는 모택동이라고 쓰고 있다. 개전 당시 막 장개석을 몰아낸 이후 중국 내에서의 정치적 위치도 확고하지 않았고 스탈린에게도 무시 당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세계 최강의 미국을 상대로 싸워서 휴전선까지 밀고 내려가 버틴 것은 중국의 입장에서는 큰 승리였고 국제사회에서 신생 중국 공산국가의 위세를 떨친 효과를 가져온 것이라 한다. 그 이후 모택동은 중국에서 황제에 비교되는 권력을 행사하게 되었다고 한다. 평생 이를 한번도 닦지 않아서 이가 초록색이었던 (차를 많이 마셔서) 모택동은 황제처럼 중국 각지에서 진상하는 처녀들을 즐겼고 명분상 사회주의자이지만 사실 “인민” 의 목숨을 아주 사소하게 여겼다고 저자는 쓰고 있다. 한국전에서 살아남은 미군들은 귀국 후 별 주의도 칭찬도 받지 못하고 왜 미국이 한국에서 싸워야 했나 또는 그 수많은 목숨을 잃을 만한 가치가 있었나 라는 회의를 가지고 있던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근래에 남한이 러시아를 능가할 만한 경제력을 가진 나라가 되자 그에 대해 보람을 느끼는 참전 용사도 있다고 쓰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이 “가장 추운 겨울” 인 이유는 당시 연합군에게 중공군보다 무서웠던 것이 피할 수 없는 추위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종전 후 30년 만에 참전 군인 둘 이 처음 만났는데 인사말이 “이제 몸이 다 녹았는가?” 이었다고 한다. 한국이 아주 추운 나라라고 생각하는 미국인들을 가끔 만나는데 한국전쟁의 기억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하긴 뉴욕 (위도 40도) 이 서울 (위도 37도) 보다 북쪽에 있는데도 서울의 겨울이 뉴욕의 겨울에 비해 더 춥게 기억되는 것은 사실이다. 인터넷을 뒤져 봤더니 서울의 겨울 평균 기온은 영하 5도 이고 뉴욕시는 영상 1도가 좀 안된다고 한다.

이 책을 쓰고 난 후 며칠 안돼 저자는 다음 책을 준비하려고 사람들을 인터뷰하러 다니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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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 Team of Rivals

미국 대통령 / 미국사 | 2009/05/14 23:08 | Posted by krkim



Lincoln (1809-1865)
 
오바마가 읽고 영향을 받아 힐러리를 국무 장관에 임명했다고 유명해진 책이 Team of Rivlas (Team of Rivals: The Political Genius of Abraham Lincoln by Doris Kearns Goodwin) 이다.  링컨과 그의 내각이 어떻게 남북전쟁을 수행했는가를 서술한 책이다.   그때까지 선거에 나가서 이긴 적 보다 (한 다섯 번 정도) 진 적이 (여덟 번 정도) 훨씬 많은 링컨이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했을 때 경력이나 지명도에서 네 명의 후보 중 가장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후보였다고 한다.  그런데 가장 유력한 후보가 과반수를 얻지 못하자 여러 번의 재 투표를 하는 와중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아 반대파가 가장 없는 링컨이 합종연횡 또는 어부지리로 후보에 당선되었다고 한다.
 
링컨은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자기와 경쟁했던 세 명을 모두 장관에 임명했다.  추측해 보건대 시골 변호사 출신에 최고 경력이 하원의원이었던 링컨은 대통령에 당선된 후 측근 중에서 장관을 시킬 만한 인물이 별로 많지 않았을 것이다.  또 링컨이라는 사람이 자기가 남보다 잘났다는 의식이나 자기를 무시하는 사람들에 대한 거부감이 별로 없고 능력위주의 인사를 하려고 했다고 한다.   국무부 장관에 임명한 수어드 (William H. Seward, 1801-1872) 라는 인물은 원래 가장 정치적 위상이 높고 제일 유력한 공화당 후보로서 처음에는 링컨을 무시했지만 나중엔 링컨의 지도력을 인정하고 내각에서 링컨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이다.  그러나 재무 장관에 임명한 체이스라는 인물은 끝내 링컨을 무시하고 자기가 차기 대선 후보가 되도록 뒤에서 공작을 벌였다고 한다. 
 
이 책에서 재미있게 느낀 것은 링컨의 용인술이나 링컨 내각의 이야기보다 링컨이라는 사람의 성격과 인생이다.   링컨의 일생은 좀 안타깝다 라든지 안됐다 같은 동정심을 많이 느끼게 한다.  먼저 링컨은 미국 개척지의 아주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고생을 많이 하면서 자랐고 어머니가 9세 때 병사했다.   어릴 때부터 총을 들고 사냥을 해서 먹을 것을 구해와야 했고 나무를 해 와야 해서7살 때부터 도끼를 아주 능숙하게 잘 썼다고 한다.   링컨 하면 연상되는 그가 살던 통나무 집이란 사실상 야영 텐트와 큰 차이가 없는 주거 환경이었다.  농한기 때 한두 달씩 이곳 저곳 학교에 다닌 것 외에는 정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지만 링컨은 책을 읽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고 한다. 문맹이었던 아버지는 큰 아들 링컨이 “쓸데없이” 책을 읽는 것을 싫어해서 헛간이나 숲속에 들어가 책을 읽곤 했다고 한다.   새 엄마가 들어왔을 때 그녀의 짐속에 로빈슨크르소와  아라비안 나이트등의 책이 들어있는 것이 링컨에게는 커다란 위안이었다고 한다.  
 
링컨의 첫사랑이었던 여자는 갑자기 병사해서 상심한 링컨은 따라서 죽으려고 했다고 한다.   링컨은 그 뒤로도 여러 번 심한 우울증 증상에 시달렸다.   자수성가한 링컨은 어떤 부잣집 딸과 “망설이다” 결혼하는데 자기가 최소한 상원의원의 부인쯤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링컨의 부인은 아마 바가지를 많이 긁었던 모양이다.  부인이 성질을 내면 아이들은 숨고 링컨은 피했다고 하는데 시골 변호사로서 이 동네 저 동네 출장을 다니던 링컨은 그래서 출장 여행을 반겼다고 한다.   링컨의 부인이 화를 내는 것을 남북전쟁 당시 북군 총 사령관 그랜트 장군과 그의 부인이 목격한 것이 이 책에 소개되어 있다.  대통령이 된 링컨이 부인과 함께 그랜트 장군이 지휘하는 북부 연방군 총 사령부를 방문하는데 링컨과 그 수행원은 말을 타고 가고 부인 마차를 타고 가면서 진흙탕이 된 길 때문에 마차의 속도가 많이 늦어졌다고 한다.  먼저 도착한 링컨이 보니까 전체 사병들이 도열해서 기다리고 있고 부인을 기다리다 보면 병사들의 식사시간이 늦춰질 것 같아 그냥 사열을 시작하겠다고 지시했다고 한다.   원래 대통령 부부가 함께 마차를 타고 도열한 병사들을 지나가며 손을 흔드는 행사였던 것 같은데 링컨의 부인은 그런 것을 좋아했던 모양이다.  도착해서 링컨이 먼저 사열을 하고 있는 것을 본 부인은 화를 내고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랜트 장군의 부인은 어쩔 줄 몰라 하고 수행한 또 다른 부인은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야단을 치느냐고 울음을 터트렸다고 한다.  링컨의 부인의 신경질은 그날 저녁 만찬 때까지 식지 않아서 사람들 앞에서 링컨에게 야단을 치고 있었고 링컨이 그냥 미소를 지으며 부인의 불평을 가만히 듣고 있었으며 그랜트 장군은 그러는 링컨을 옆에서 놀란 표정으로 지켜보다가 그날 일기에 썼다고 한다.
 
링컨의 대통령 당선은 일생일대의 영광이요 승리였지만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마자 남북 전쟁을 일어나 그걸 즐길 겨를이 없었다.   백악관  창문에서 보이는 버지니아 주가 남부군에 합류하는 바람에 수도 워싱턴이 남부군에 점령될까봐 잠을 못 이룬 적도 많았고 또 그 와중에 큰 아들이 병에 걸려 죽는 것을 옆에서 지켜봐야 했다.   링컨의 각료나 장군들 중엔 임기 초기에 시골 촌뜨기 변호사 출신 링컨을 은근히 무시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남북전쟁이 승리로 끝나고 사람들이 링컨이라는 사람을 진정으로 인정하고 존경하기 시작하고 대통령에 재선 되었을 때 부인을 포함한 주의 사람들은 평소에 무표정한 링컨이 그렇게 행복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바로 그 무렵 암살을 당하는 것이다.  힐러리에 비유되는 국무 장관 수어드는 다른 장소에서 공격을 받아 중상을 입고 있어서 사람들이 링컨의 죽음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엔 경쟁관계 였지만 남북전쟁을 치르면서 링컨과 상호간에 신뢰와 존경심을 키워오던 관계였는데 링컨이 병실에 찾아오지 않는 것을 수어드는 이상하게 여겼다.  그러다 창밖에 조기가 걸린 것을 보고 링컨이 암살당한 것을 눈치챈 수어드는 소리를 내어 울었다고 한다.
 
링컨 하면 제일 먼저 떠 오르는 것은 물론 노예 해방이다 (링컨의 업적 중에는 미국의 추수 감사절 Thanksgiving 을 만든 것도 있다).   링컨이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존경 받고 세계인들의 존경을 받는 것이 노예 해방과 관계가 있다.  링컨이 승전 직후 당시 남부의 수도 리치몬드를 방문했을 때 길거리에서 그를 알아본 흑인들이 몰려와 구세주가 오셨다며 둘러싸고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고 한다.  암살자가 있을까봐 경계하던 링컨의 일행은 놀라기도 하고 감격하기도 했는데 링컨이 자기에게 무릎을 꿇은 흑인 노인에게 그러지 말고 일어나라고 하자 흑인들은 링컨을 둘러싸고 찬송가를 불렀다는 것이다. 
 
그러나 링컨이 노예제도를 폐지하기 위하여 남북 전쟁을 일으킨 것은 물론 아니다.   링컨은 노예 제도를 반대했지만 그것을 없애기 위해서 당시 미국 인구의 2% (60만명 정도) 가 사망하게 되는 전쟁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 남북한 인구에 비유하면 거의 150만명의 사람들이 사망한 것이다.)   노예 제도를 (최소한 그 제도의 확산을) 반대하는 북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공화당의 후보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 되자 남부가 미리 분리를 선언했다.  (어떻게 보면 당시 공화당의 성격은 요새 미국 공화당의 성격과 반대이다.) 그러면서 남부 지역에 위치한 중앙정부의 지휘하에 있던 군기지를 남부군이 먼저 공격해서 점령하자 남부를 달래는 유화책을 모색하던 링컨은 무력을 사용해 남부의 반란에 대응하도록 결정한 것이다.  미국인들의 입장에서 링컨의 가장 큰 공적은 미국의 분리를 막은 것이다.
 
링컨을 살해한 부쓰 (John Wilkes Booth) 와 그 일당은 링컨을 악인이며 독재자라고 확신했고 자기들이 정의의 편에 서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쫓기던 부쓰가 다리가 부러져서 아프고 춥고 배고픈 와중에 먼저 찾은 것은 신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신문을 본 부쓰는 실망했다. 사람들이 자기를 영웅으로 생각할 줄 알았는데 그 반대였기 때문이다.  링컨은 원래 남부의 전후 처리에 대하여 아주 관용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는데 링컨의 암살로 남부 사람들은 더 미움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객관적으로 쓰인 위인들의 전기를 읽으면 이 사람도 이런 부정적인 측면이 있었구나 또는 역시 이 사람도 과대 평가 되었구나 같은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은데 링컨의 경우엔 기분이 다르다.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위인 대접을 받는 것에 대하여 별로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생각이 안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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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의 여러 분야 - 2

분류없음 | 2009/05/12 00:31 | Posted by krkim

응용 심리학

임상 심리학이나 상담 심리학 말고도 심리학에는 여러 응용 분야가 있다.  학교 심리학 (School Psychology) 이라는 분야는 상담 심리학과 겹치기도 하지만 주로 초/중/고등학교 IQ 검사나 학습 장애 검사 적성 검사등 심리 테스트를 담당하는 분야이다.  미국에는 거의 모든 학교에 학교 심리학자가 일하고 있다.   또 산업/조직 심리학 (Industrial/organizational Psychology) 이라는 분야는 기업체를 포함한 조직에서 문제들을 다루는 분야이다. 예를 들어 채용 시험이라든지 적성 검사, 능률 향상, 동기 부여, 지도자 훈련등이 산업 조직 심리학이 다루는 분야이다. 


학문적 심리학

응용을 일차적 목적으로 두지 않고 순수 학문으로서 알고 싶다는 동기나 복잡한 현상 뒤에 숨어 있거나 그런 현상들을 보다 간단하게 설명해 주는 원칙이나 패턴을 찾아내는 것이 주 목적인 심리학 분야를 학문적 심리학이라고 불러 보자.  물론 응용 심리학이란 대체로 이런 노력의 결과를 현실 문제에 적용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학문적 심리학 분야의 대표적 분야로는 실험/인지 심리학 (Experimental/Cognitive Psychology) 과 사회 심리학 (Social psychology) 등이 있다.  연구 중심 대학원의 심리학 전공은 주로 이 두 분야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임상 심리학과 아주 다른 분야가 실험 심리학 분야이다. 실험 심리학 분야는 과학으로서의 심리학을 강조하는 분야로서 기억, 인지, 지각, 학습, /신경 작용등을 주로 공부한다. 요새는 실험 심리학이라는 용어 대신 인지과학 (Cognitive Science) 이라는 말도 많이 쓴다.  생리 심리학 (Physiological Psychology) 라고 불리던 분야는 뇌/신경 과학 (brain science, neuroschience) 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사회 심리학에서는 사회 속의 인간 관계, 정치 심리학, 사랑, 미움, 인종/사람 차별 등의 문제를 다룬다.

미국 심리 학계 내의 갈등

과학적 심리학 연구에서 나오는 지식이 임상 심리학 분야 같은 응용 심리학 분야에서 응용되는 것이 이상적이다. 사실 학습 심리학 연구 결과에서 나온 고전적 조건 반사 랄지 조작적 조건 행동 원리들이 꽤 효과적인 행동 치료 방법으로 쓰여지고 있다. 그러나 심리학의 역사가 짧고 심리학에서 다루는 문제가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 그런지 응용 심리학에서 쓰이는 방법을 과학적 심리학자들이 인정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프로이트의 이론에 근거한 꿈의 해석이라든지 로사치 (미국 얘들은 로샼 이라고 발음 하던데) 잉크 블롯 테스트 (Rorschach Inkblot Test) 같은 것은 별로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보는데 아직도 상당 수의 임상 심리학자들이 해몽도 하고 잉크 블롯 테스트도 한다.

응용 심리학자와 과학적 심리학자의 갈등이 미국에 두개의 심리학회가 생긴 이유이다.   1892년에 현대 심리학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분트의 제자인 홀 (G. Stanley Hall) APA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를 창설한 이래 APA 는 미국의 유일한 전국적 규모의 심리학자들의 조직이었다그런데 APA 활동이 점점 더 응용 심리학 위주로
치우치고 덜 과학적이라고 느낀 일부 심리학자들이 1988 년 과학적 심리학을 모토로 APS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를 새로 창설하였다. 물론 오랜 전통과 권위 있는 학술지를 가지고 있는 APA (150,000 명 회원, 자기들 통계) 보다는 훨씬 적다. (APS 회원 수12,000, 자기들 통계그러자 APA 도 자극을 받아 과학적 심리학을 강조하며 학문적 심리학자들을 달래며 이탈을 막기도 한다. 그런데 학자들은 전국적 학회보다는 주로 자기 분야의 분과 학회 위주로 활동하고 있고 또 APA APS 두 조직에 모두 가입한 심리학자들도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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